*이 글은 <위로가 되는 환상들>(갤러리175,2020)  도록에 수록된 글입니다. 

위로가 아니라면,

Not Comfort, Something More

​허호정

 Hur Hojeong

1. 주장

 정경빈의 이 ‘추상된(abstracted)’ 화면은 무언가를 주장한다. 그는 보는 이의 눈에 직 접적으로 환기되지 않는 어떤 사건을 배면에 두고 그것을 주장한다. 그러니까 이 그림 들을 만든 것은 신체라고, 그것도 속박된 신체, 상자에 갇히거나 침대에 붙들려 있으 며, 근육과 신경에 통증을 느끼고, 미끄덩대거나 거칠고 불쾌한 무엇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신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캔버스가 덕지덕지 묻고 흘러내리 고 짓이긴 물감을 보여줄 때, 평면을 부비고 찌르며 간질이는 붓의 터치를 보여줄 때, 우리는 이를 신체의 투사(projection)이자 투시(penetration)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주장은 정당한가?

2. 재현

 정경빈이 전한 이야기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글을 풀어내면서 빚게 되는 오해의 지점이 있다. 스스로를 ‘환영(illusions)’이라 말하는 그림들은 고통을 겪던 몸(들)로부터 시작하여, 그 몸(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미지가 되기 위해 그 몸(들)과 그 아픔, 부자유, 억압 등을 전제한다. 나는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에 글로 접근하며, 나 자신이 품게 된 어떤 오해를 발견한다. 아래는 질문의 형태를 한 오해이다.

 첫째, 그림은 고통을 ‘반영’ 혹은 ‘표현’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그렇게 실효가 없다. 그렇다고 말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말하거나 그림은 어떤 종류의 고통과 ‘연관’을 맺을 수 있다. 정경빈의 주장이 문제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시각적 이미지 가 필연적이고도 자연적으로 고통을 반영한다거나 표현한다고 볼 근거는 없는데, 그 시각적 이미지가 고통과 연관된다고 말해볼 수는 있는 것이다. 이때, 정경빈의 이 그림 들은 직접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신체가 등장하지도 않고, 아픔을 환기할 만한 어떤 도상적 관습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둘째, 왜 어떤 공포/트라우마/비극/고통은 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 장면의 잔혹성과 직접성이 불편을 야기하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로부터 비켜선, 애써 ‘재현하지 않는’ 이미지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정경빈은 이러한 이미지 만들기를 통해 그 자신의, 혹은 사회의 어떤 공포/트라우마/비극/고통을 ‘재현’하지 않고 우회하며 “다른 진실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정경빈의 이 그림들에는 그 ‘단서’가 없다. 이것들은 고통과 비극의 상태를 지시하지 않고, 증언하지 않는다.

 

 사실, 정경빈의 그림은 고통을 반영하거나 표현하지 않으며 재현을 의도하지도 않지만 이 모두를 꿈꾸는 상태인 것 같다. 그 결과, 우리가 보는 것은 물줄기, 물감, 빛의 어른거림, 붓의 자국, 붓으로부터 유래한 털과 같은 흔적, 드리워진 그림자, 흰 색의 벽, 그 벽을 채우는 회반죽, 하얀 자락, 파도, 입김, 유령 그런 것들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3. 비극 이후

 

 아우슈비츠 이후, 9.11 이후, 세월호 이후, 그리고도 수많은 개인적 ∙ 사회적 비극의 이후에 위치한 작품과 전시는 스스로 ‘주제 삼는’ 이야기의 증명과 증언, 애도 그 이상/초과에 도달(해야) 한다.

 자주 예술은 ‘감히’ 트라우마와 비극을 재현할 수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 여겨졌다. 발화하는 예술은 당사자성이라 할 만한 자질을 갖추지 않는 한 금기시되었고, 그렇지 않다면 ‘당사자’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한편에서 이것이 예술을 제한하는 일일 수 있음을 확인하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 우려는 앞의 비난이 일종의 검열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미지가 포르노적으로 소비되는 대신 그 자체의 자율성과 당대성을 확보하고 고유의 가능성을 작동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연대기와 시대착오, 무시간성을 경유하고 자리한 현재에 예술은 그 자신의 자율성을 작품과 전시의 형식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이미지는 온-오프라인에 그 자신의 물리적 현존을 내보이며 고유의 투쟁과 정치를 시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비평은, 단지 비극을 소비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 사건의 서사화와 증언 및 진술의 어 법을 ‘변증법적으로’ 재고하여 현재에 자리를 차지하는 예술들에 집중한다.

 따라서 현재의 비평은 어떤 비극, 피해와 질병, 그 고통의 개인사와 연관된 작품/전시에 대해 다시 말할 수가 있는 것이며, ‘증언/재현 불가능성’을 둘러싼 길고도 치열한 논 쟁의 역사를 스스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비평의 관심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극들 자체가 아니라, 다시 정위하는 비극들의 현재적 관점과 이에 관여하기로 결심한 어떤 예술 작품과 전시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이때의 예술 작품과 전시가 주제 삼는 내용과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식 자체를 주의한다. 무엇보다도 이 내용과 형식의 역학 관계를 엄밀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4. 전환

 

 다섯 살 난 로르는 동생과 흰 색 침대보를 가지고 논다. 가만히 정지한 상태로 자기 몸 을 침대에 뉘인 후, 동생에게 그 위로 침대보를 덮으라 시킨다. 그리고 정적. 마치 죽은 사람처럼 로르는 침대 위 하얀 천 아래에 몸을 가만 둔다. 이윽고 동생의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 그때 번쩍 일어나 로르가 동생을 놀래고, 이런 놀이가 계속되면 울음 소리 어떤 사물은 특정한 기억을 환기한다. 그 기억은 때로 가혹하고 슬프며 아프다. 그러나 사물은 그 기억과 조금씩 다른 위치에 놓이고, 이러한 자리 바꿈은 아픔과 고통을 다른 것으로 치환한다. 로르와 동생의 하얀 침대보 자락은 어머니의 차가운 몸을 덮던 그 것과는 다르며, 그 다름을 계속 상기시키는 놀이로 승화된다. 새하얀 천의 오르락 내리락, 이 이미지는 기억을 다르게 작동시킨다.

 정경빈은 병든 몸이 겪어야 했던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고통, 억압과 부자유의 상태를 기억한다. 그에게 어떤 벽, 회백색의 벽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연상시킨다. 병원의 긴 복도, 낡은 건물의 층계참, 빗물이 젖어 드는 창, 수의, 거품, 타액, 고문, 억압, 유령 같은 것. 전시장을 가득 메운 높이 193cm의 캔버스들은 이런 기억을 공유한다. 이것들은 모두 가로막힌 벽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몸으로부터, 흰 색의 벽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작가는 흰 벽을 벽인 채로 두지 않고, 그 위로 색을 더한다. 환상의 빛, 살이나 털의 결, 담가 놓은 대야에서 펄떡이는 정어리 같은 것, 볕, 그늘, 그림 내부에 위치하는 또 다른 프레임, 얼룩, 물방울, 붓 자국 들을 흰 색 위로 타고 오르게 하면서, 벽을 다른 환상으로 치환한다.

 이제 이 그림들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자기 신체와 병에 대한 개인적 고백으로부 터 그것을 이미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완전히 치환된 어떤 ‘이미지’로 자처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사건과 비극 자체의 이미지로의 변환이다. 재현을 애써 거부함으로써 비극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 자체로부터 출발하여 전환되는 이미지이다.

 아마도 이 다음을 생각해야 할 텐데, 그것은 정확히 고통을 직시하는 모양이지 않을 까?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면, 정경빈은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게 될까?

1.Assertion

  This 'abstracted' screen by Jeong Kyeongbin's asserts something. It puts on the backside and asserts an event that doesn't quite directly arouse the viewing eyes. That is to say, the creator behind these works is a body; specifically, one that is in captivity, imprisoned in a box, bed, bed-ridden, aching in muscles and nerves, and tormented by something slippery, coarse, and repulsive. When this enormous canvas displays paint that is thickly slathered, flows down, and crushed, along with the touch of the brush that rubs, stabs, and tickles the surface, we must interpret this as a projection and at the same time penetration of the body.

  Is this assertion warranted?

2.Representation

  There's a point of misapprehension between the narrative Jeong Kyeongbin depicts, and me listening to and scribing it. The pictures that call themselves 'illusions' are brought forth from the suffering bodies, and to become an image that can be comforted, they establish the bodies' pain, unnaturalness, and oppression as the precondition. I approach the images formed through manners described above by writing, discovering misapprehensions engendered by myself. Here are such misunderstanding that take the form of questions.

  First, are pictures capable of 'reflecting' or 'expressing' pain? However, this kind of approach does not yield many fruits. Whether if she says yes or no, pictures can form 'association' with certain types of pain. This is what leads Jeong Kyeongbin's claim to be so contentious. Although there is no evidence that certain visual images inevitably and naturally reflect or express  pain, one can at least claim that such visual images can be associated with pain. Here, Jeong Kyeongbin's pictures neither directly feature suffering bodies, nor do they share iconic customs that could evoke pain.

  Second, what makes her think that particular fear/trauma/tragedy/pain cannot be represented? Is it because the subject matter's cruelty and immediacy incite discomfort? If so, how should oblique images, ones that go out of their ways to 'not represent'? Jeong Kyeongbin says through this kind of image-making she avoids 'representing,' but instead makes a detour and 'forms different truth' of a particular fear/trauma/tragedy/pain inflicted to her, or the society. In a word, Jeong Kyeongbin's drawings do not display those 'clues.' These do not indicate the status of the pain and tragedy, nor testify.

  In truth, her drawing appear to not reflect or express pain, nor intend to represent, but rather to be dreaming of all these. As a result, what we see is a picture that reminds us of such things as water streams, paint, the flickering of light, the trace of brush, marks that born from brush and resemble fur, overcast shadow, white-colored wall, plaster that fills it, white shirttail, wave, breath, specter, and so on.

3.After Tragedy

  After Auschwitz, after 9.11, after Sewol, and after so many individual or societal tragedies, artworks and exhitions that follow them must by themselves reach or surpass the proof, witness, and mourning of 'topical' stories.

  Oftentimes people considered that the art couldn't 'dare' to represent tragedy and trauma, nor should it. Provocative artworks are prohibited unless the artists were proven to be directly involved with the events in question, and if not, couldn't avoid accusation could potentially stifle art as a whole and made their voices of concern louder. Instead of pornographic consumption of images that made some forms of censorship express alarm, some started to assert the images' own potential that is certified by art through the autonomy of contemporary significance.

  And now let us skip to the present. In the present - a period that went through history, anachronism, and timelessness - reaffirms its own autonomy through the format of works and exhibition. On and offline, art displays the physical presence of the image, enabling its own struggles and politics. In this context, contemporary criticism focuses on artworks that do not just capitalize on tragedy but instead finds a place in the present by 'dialectically' reconsidering narration and the grammar of witness and testimony of tragic events.

  Consequently, current criticism is permitted to discuss art/exhibition that is associated with certain tragedies, loss and illness, and resulting pain, and it must by itself understand the long and desperate struggle surrounding 'the impossibility' of testimony and representation.' The interest of criticism does not lie in the tragedies of the past, present, and the future themselves, but certain artworks that decided to involve themselves in the manifes perspective of reorienting tragedies and their exhibition. Not only that, one is mindful of these art pieces and the exhibition's format that  wrestles with the subject. Foremost, it is essential to 'pay attention' closely to the dynamics between this content and the format.

4.Transformation

  Laure, five years old, plays with her sister using a white bed sheet. She lies on the bed completely still and tells her sister to put the bedsheet over her. Then there is silence. Laure stays still under the sheet over the bed as if dead. Follows is her sister bursting into tears. Then Laure bolts upright and surpries her, transforming the crying into roaring laughter as the play continues on. Laure and her sister lost their mother just a while ago.

  Certain objects brings a certain memory. That memory can sometimes be cruel, sad, and painful. But the objects get ever so slightly relocated to places different from the memory, and these relocations transform the pain and suffering into something else. Laure and her sister's white bed sheet differs from one that covered their mother's cold dead body, transcending into play that emphasizes such difference. The rising and falling of the white sheet activates memory in a different way.

  Jeong Kyeongbin remembers the physical and bodily pain, oppression, and unnaturalness that a sick body must've endured. Long hospital hallway, old building's stairs, rain seeping through windows, patient gown, foams, bodily fluids, torture, oppression, specter, etc. These are the memories that 193cm-long canvases that completely fill the exhibition share. All these have their beginnings in the body that couldn't move in front of the obstructing walls, from the white wall. But the artist does not let the white walls be just that and adds colors. She takes illusionary light, the texture of flesh and fur, something that looks like sardine flopping on a submerged pan, sunlight, shade, another frame that exists within the picture, spots, waterdrop, brush mark, and make them all ride up above white color and replaces the wall with another illusion.

  Now, these pictures musr tell different stories. They should set themselves into an 'image' that went through a totally diffrent, complete transformation during the process of changing a personal confession of her body and illness into a 'visual image.' So this is not comfort, but rather a transformation to the image of the event and tragedy themselves. Instead of making tragedy impossible by actively rejecting representation, the image starts from the impossible by actively rejecting representation, the image starts from the impossibility itself and undergoes a transformation.

 

  If it's not comfort, what kind of story should we expect from Jeong Kyeong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