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박선호의 의뢰를 받았으며, 단행본 <하드카피 리스트 북>에 수록되었습니다.

​몸의 얼룩과 911-선호에게

​정경빈

2019년 9월 11일 

선호, 잘 지내지요?

​저는 오늘 911  Groung Zero에 다녀왔습니다. 왠지 언젠가

한 번쯤은 꼭 9월 11일에 World Trade Center에 다녀와

보고 싶었습니다. 구글 맵을 켤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가니 군중들이 있었고, 예상보다 사람이 더 많아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저는 군중 속이 아직도 긴장되곤 하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죄다 어디서 나와 모여든지도 모르는 큰 무리가 커다란 구멍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사실 구멍은 구멍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는데요. 거대한 쌍둥이 건물이 통째로 뽑힌 그곳을 어떤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잭과 콩나무>에서 하늘에

닿는 그 거대한 나무 기둥 두 개가 송두리째 하늘로 증발한 느낌이었달까요. 자연스레 911테러 사건 당시의 저를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마 9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TV를 틀면 어떤 채널이건

911 테러 사건을 다루었는데, 어른들도 만나면 그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아버지의 큰형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아들이 미국 출장을 밥 먹듯이 가는 큰아빠를 많이 걱정한다고 말하는 장면도 잊히지 않습니다. 직접 찾은 현장은 지구 반대편에서 TV화면으로 본 것보다 더 커다란 충격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서 군중 속에서의 긴장감을 잊은 채로 사람들과 하나 된 채

둘러 모여 쏟아져 내리는 물과 그 hole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hole 과의 첫 만남은 장소와의 만남이 아닌 한 인격체를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저 미국인들의

뉴스/이슈 현장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입장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적인 또는 소속의 문제를 차치하고 저는 마치

개인과 개인이 만난 경험을 했습니다. 나와 같은 트라우마 덩어리인 한 사람의 민낯을 생생하게 마주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의 인생과

외부 세계 사이에 있는 경계선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세계가 이렇게도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였을까, 무엇이 저를 압도한 것인지 자문했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추측은 이러합니다.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환자들은 무감각 단계를 겪습니다. 그 단계를 인식하는 이도 있고, 인식하지 못하는 이가 있겠지만, 강렬하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때때로 감정적 답답함/ 분노를 호소하게 합니다. 저 역시

PTSD를 경험하며 느꼈던, 아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지나오며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온몸 구석구석에 숨겨두었던

같습니다. PTSD를 경험하는 이들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했던 모든 행동들을 떠올리면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낍니다. 또다시 그와 같은 격렬한 두려움에 갇히고

싶지 않아 뇌가 사건들을 잊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잊으려고 애썼던 기억들을 그새를 못 참고 감아 놓은 붕대 사이로

흘러내리는 진한 핏자국으로 발현됩니다.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로 나타나고, 때로는 온몸이

경직되거나 섬유근육통, 만성 피로 같은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강렬한 수치심 또는 분노로 돌아옵니다.

누워있는 기억만을 가진 저의 신체가 거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회적 구조물과 동기화되며 해방감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자면, Netflix에서 방영했던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 일레븐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일레븐은 잊힌 기억 속에서 자신의 초능력으로 자신과 동일하게

파파에게서 조종당했던 언니를 되찾습니다. 둘은 서로의

트라우마를 서로를 마주해버림으로써 확인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트라우마를 코앞에서 정면으로 대면하는 일은 버거운 일이었을 것

입니다. 엉뚱한 예시였지만요, 동일한 경험이 있는 대상에

자신을 동기화하는 순간 일어나는 일을 일상생활에서

'공감'이라 하는데, 저는 비행기가 폭발했던 그 지표 점에서

장소와의 동기화가 일어났던 것 같아요. 마치 죽은 줄 알았던 언니를

만난 듯, Ground Zero는 저에게 동일한 상실의 경험이 있는 한 사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옴몸으로 테러의 현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911 Memorial

앞에서 나는 나의 상실에 어떤한 방식으로 저항하였는가를

돌아보았습니다. 질병을 겪고 많은 노력들을 했었는데요,

두 발로 서고 스스로 걷게 된 후부터 저는 기회가 되는대로

많은 여행을 다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땅을 밟아도

상실에 대한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은 어딜 가도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 뿐 아니었을까요.

몸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붕대 사이로 스며든 선명한 핏자국처럼요.

즉 트라우마의 절대 회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치료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이길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끔 강한 자아를 만드는 것에 동참해주는 것으로 생각해 왔고요.

자아를 분해해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직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트라우마 치료에는 반드시 대상자의 몸, 마음, 뇌 모두가 고려되어야 하므로 많은 지지자,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 몸의 얼룩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선명하고 희미한지, 혹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작은지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바뀌기 일쑤고 계속해서 고쳐지고 다듬어지는 것이 기억인데, '트라우마'라는 녀석도 이것을 잘 이용하는 편입니다.

잊을 만할 때쯤 대상자를 다시 공격하기도 합니다. 불현듯이 얼룩

덩어리가 얼굴을 불쑥 내밀 때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지

못한 사실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또 한 번 경험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사건의 결말이 나빴던 것은 또 나의 탓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나의 트라우마를 못 잊는 것은 나의 탓이 아닙니다. 저 깊숙이 트라우마가 원래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잊는 날이 많다고 트라우마가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어떤 몸은 잊는 날이 많아질 것이고 어떤 몸은 생각나는 날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은  홍수처럼 밀려오는 감각과 이미지들 때문에

마음이 조금 어지럽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장소로서, 이미지로서, 물질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살아 숨 쉬는 기념비처럼 단단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Lower Manhattan, NewYork

​경빈 씀